한국의 갈릭걸즈, 그 애칭의 선한 영향력

2018 평창 올림픽을 사로잡은 한국 최초 컬링 메달리스트 ‘갈릭걸즈’의 도전은 계속된다

컬링 신화의 주인공 갈릭걸즈

한국 여자 컬링팀은 갈릭걸즈로 가장 많이 알려져있는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의 주역들중 하나이다.

한국 여자 컬링팀의 플레이를 다시 보고싶다면?

아래 링크 클릭 (1분)

'팀 킴' 스토리 - 대한민국 여자 컬링 대표팀 '갈릭걸스'

'팀 킴' 스토리 - 대한민국 여자 컬링 대표팀 '갈릭걸스'

올림픽 이후, 한국 여자 컬링팀은 한국 뿐 아니라, 매운 마늘의 고향인 의성을 대표하는 스타가 되었다.

선수들은 평창에서 얻은 인기의 기세를 몰아 다음 동계 올림픽 주최지인 베이징으로 향할 예정이다.

사실 컬링팀 선수들은 팀의 애칭 '갈릭걸즈'를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하지만 별명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력과 컬링팀의 최근 행적을 고려하면, 선수들이 단번에 갈릭걸즈라는 애칭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마늘소녀 애칭 덕에 컬링팀은 의성군의 얼굴마담이 되어 그들의 고향인 의성군 시민의 마늘 판매를 증가시켰고, 의성 마늘 햄의 모델이 되었다.

최근엔 한국의 실종아동 찾기 홍보 대사로 위촉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컬링팀은 팀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실종아동 찾기 캠페인을 알리고 실종아동들의 가족을 위로하는데 힘쓸 것이다.

마늘 가공식품 매출 40% 껑충

평창 올림픽에서 의성 출신 팀킴의 이례적인 승리는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고, 한국인들의 마늘소비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KTV 뉴스에 따르면, 동계올림픽 이후, 이전에 비해 마늘 가공식품의 매출이 40% 늘어났다.

“컬링 은메달 따고부터는 마늘수요가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희 지금 풀로 가공하고 있습니다.” 오흥국 / 농원 대표

사실상 컬링팀 개개인은 마늘과  크게 관련이 없으나,  애칭 ‘갈릭걸즈’는 이토록 컬링팀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마늘 소녀라 부르지 마오

마늘소녀 애칭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는 것은 컬링팀 김민정 감독과의 인터뷰에서도 언급되었다.

김 감독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선수들은 마늘과 사실상 관련이 없고, 젊은 선수들에게 좀 더 예쁜 별명을 지어주셨으면 한다” 라고 말했다.

이후 한국의 방송국 MBC는 새로운 애칭을 공모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올렸다.

@mbcolympics 👈🏻여기서 참여가능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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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벤져스를 소개합니다

공모 이후 팀의 새로운 애칭은 “컬벤져스”가 된다. 하지만 컬벤져스는 국내외 팬들의 입에 착 붙는 애칭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컬링팀은 마늘관련 행보를 계속 이어가게 되었다.

마늘만이 팀킴의 수혜를 입은 것은 아니다. 최고의 수혜종목으로는 컬링이 압도적이다.

한국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있던 종목은 컬링이었다. 올림픽 기간동안 무려 (70%)의 한국인이 컬링을 가장 흥미로운 종목 이라고 응답했고, 이 조사결과는 한국이 금메달을 획득한 스피드 스케이팅 (29%)과 스켈레톤 (23%)에 비교 했을때 컬링이 올림픽 기간동안 한국인들에게 거의 독보적인 관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 링크는 많은 관심을 받았던 한국 여자 컬링팀과 캐나다의 경기이다.

링크 클릭

CAN v KOR (리그전) - 여자 컬링 | 평창 2018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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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링의 새 시대

한국에 컬링을 시작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리고 새로운 컬링스타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한다.

현재 팀킴의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이다.   

김영미 선수는 SBS 뉴스 인터뷰에서 

“4 년뒤에 베이징 올림픽까지 나가서 더 좋은 모습으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전에 팀킴은 올해 한번 더 평창에 출격 예정이다. 강릉 컬링 센터에서 11월에 열리는 태평양-아시아 챔피언십을 위해서 이다.

올해가 되어서야 유명세로 바쁜 팀킴이지만, 팀킴의 역사는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2022 베이징을 향한 끝없는 여정 *

이야기는 1988년, 팀킴이 태어나기도 전에에 시작된다.

88년 캘거리 동계 올림픽에서 시범경기였던 컬링을 처음 보게된 김경두 전 컬링 협회 부회장은 컬링이 한국인에게 적합한 게임이며, 한국인에게 승산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는 그 이후 의성군에 컬링장을 만들자는 *제안*을 한다. 당시 컬링 선수도 컬링장도 전무했던 한국에, 그것도 젊은이들이 줄어드는 지역인 의성에 말이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의성군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컬링이 의성군 그리고 대한민국에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그의 의지는 결국 결실을 맺는다.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마침내 2006년, 의성군에 컬링센터가 오픈 되었다.

 최초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여자 컬링팀중 첫번째로 컬링장에 관심을 갖게된건 근처 의성여고를 다니던 김은정 선수였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김은정 선수가 체육 교사에게 컬링을 하고싶다고 이야기 했고, 교사는 하고싶으면 친구 한명을 데려오라고 한다.

수업시작 전 교실로 돌아온 김은정 선수는 시끌벅적 산만한 교실에서 *김영미 *선수와 눈이 마주치고, “컬링 할래?” 라고 묻는다. “그래” 김영미 선수의 대답이다. 그렇게 간단히 컬링원 한명을 구했다.

그후 김영미의 여동생 김경애가 컬링장에 언니의 심부름을 가게되고, 컬링 동아리에 가입하기 위해 친구 한명을 더 데려온 것이 김선영 선수이다.

한국 컬링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섯번째 멤버인* 김초희* 선수까지 합세해 완전체가 된다.

김은정 리더가 이끄는 ‘팀킴’의 선전은 사실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컬링은 한국에서 철저히 비인기 종목이었고, 기대가 없었던 종목인 컬링의 선전은 한국 대중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리더 김은정의 트레이드 마크인 시크한 표정도 한몫했다.

물론 국내외의 관심을 한몸에 끌어낸 팀의 애칭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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